13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2월 10일 오늘 해설 본문은 시편 139편 13~24절입니다.
안녕하세요, 묵상 가족 여러분,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잇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3연과 4연을 묵상하게 됩니다.
3연은 (시편 139편) 13~18절까지이며, 나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고,
4연은 (시편 139편) 19~24절로, 심판과 신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3절에서 시인은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잉태되고 태어나 살아가는 생애 전체에 걸쳐 세밀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시인은 자신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내장을 지으셨다`는 말은, (시편 139편 13절)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이 몸 안에 모든 장기와 필요한 것들을 만드신 분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은유적으로 `내장`이 함축한 의미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존재인 "양심"이나 "정서"의 자리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를 양심과 정서와 감정을 가진 온전한 인간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어머니 태에서 그를 만드셨다`는 고백은 (시편 139편 13절)
하나님이 그를 모태에서 수놓듯 실로 짜듯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음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시인의 몸을 섬세한 공정을 따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솜씨가 심히 놀랍다고 찬양합니다.
마치 앞선 1연에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며,
(시편 139편) 6절에서 `이 지식이 내게 너무 놀랍다`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의 놀라움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시인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5~16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시인이 모태에서 형체와 형질을 이루어 갈 때에도 이미 그를 보셨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지음을 받은 곳을 `은밀한 곳`, `땅의 깊은 곳`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편 139편 15절)
이것은 둘 다 어머니의 태의 비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입니다.
특히 땅이 깊은 곳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받았음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깊은 곳은 은밀한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신비롭게 지음 받았음을 뜻합니다.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마치 직물처럼 짜이고 조직되어 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시편 139편 15절)
장인이 형형색색의 실로 짜서 옷감을 만들듯, 옷에 장식을 수놓듯,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아름답고 정교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그를 만들었습니다.
전도서 11장 5절에서 전도자는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 라고 말했는데,
시인은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자라가며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을 생각하며 감동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보고 계셨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보셨다는 것은 단순히 지켜보고 아셨다는 의미를 넘어서,
한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는 전 과정이 하나님의 보살핌, 계획, 개입, 주관 안에 있음을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출생 전 과정을 아실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을 미리 다 아십니다.
시인은 `자기가 사는 날이 정해졌고, 그가 하루도 살지 않은 때에도 그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39편 16절)
이 고백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각 인생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며, 동시에 각 사람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각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심으로 생애 전체를 돌보실 것을 확신 가운데 소망하게 합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7~18절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와 깊으신 섭리의 비밀을 실질적으로 깨달으며 감격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시인은 주님이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신다고 고백했는데, 자신은 주님의 생각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고백함으로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그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가진 생각의 일부도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각 인생에게 세밀한 관심을 보이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와 사랑을 깨닫는다면 자연스러운 반응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달았기에 시인은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있음을 인지하며 그의 임재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시편 139편) 19~20절에서 시인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노래합니다.
앞선 분위기와는 다르게 한탄에서 탄식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인의 인생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악인에 대한 애통은 이 시가 시작되기 전에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원수인 악인에게 큰 고통을 당해왔으며,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의 결론부에서 악인을 언급하며 자신의 무죄함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드러내며 자신과 악인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악인은 파괴적이며 음모를 꾸미고 주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정의와 공평을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악인들은 윤리적인 범죄만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권위를 남몰래 허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신자 행세를 하지만, 속은 불신과 미움과 탐욕으로 가득하므로 철저하게 이중적인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21~22절을 통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자신도 미워할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자가 자신의 원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시편 139편) 23~24절을 노래합니다.
결국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마지막 구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6절을 통해 나를 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했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6절에 사용했던 용어들, `살펴보고`, `알아보고`, `시험해 보고` 헤아린 나를 (시편 139편) 23~24절의 결론에서 다시 사용합니다.
이는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시고`, `시험하시어`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당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뜻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살핀 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구합니다.
그는 특히 악한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시편 1편에는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대두되지만,
여기에서는 악한 길과 영원한 길이 대두됩니다.
여기에 악한 길은 우상숭배를 가리키기보다는, 슬픔과 고통에 이르는 길입니다.
영원한 길은 멸망하지 않는 길로서 생명과 번영에 이르는 길입니다.
시인은 이제 주님과 교통하는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3절에서 `나의 모든 길과 나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 익히 아신다`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악인들이 갈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이르는 영원한 길로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악인으로부터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인은 그 판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은 옳은 길, 선한 길,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오직 그 길로만 가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인생 여정의 길을 맡기고 나아갔던 것처럼,
오늘 묵상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 선 묵상 가족 여러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믿음의 순종과 신뢰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 묵상의 자리에서 주님을 향한 순종과 신뢰가 회복되길 원하며,
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인생 여정의 길을 맡기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 부어주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3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2월 10일 오늘 해설 본문은 시편 139편 13~24절입니다.
안녕하세요, 묵상 가족 여러분,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잇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3연과 4연을 묵상하게 됩니다.
3연은 (시편 139편) 13~18절까지이며, 나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고,
4연은 (시편 139편) 19~24절로, 심판과 신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3절에서 시인은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잉태되고 태어나 살아가는 생애 전체에 걸쳐 세밀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시인은 자신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내장을 지으셨다`는 말은, (시편 139편 13절)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이 몸 안에 모든 장기와 필요한 것들을 만드신 분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은유적으로 `내장`이 함축한 의미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존재인 "양심"이나 "정서"의 자리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를 양심과 정서와 감정을 가진 온전한 인간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어머니 태에서 그를 만드셨다`는 고백은 (시편 139편 13절)
하나님이 그를 모태에서 수놓듯 실로 짜듯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음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시인의 몸을 섬세한 공정을 따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솜씨가 심히 놀랍다고 찬양합니다.
마치 앞선 1연에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며,
(시편 139편) 6절에서 `이 지식이 내게 너무 놀랍다`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의 놀라움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시인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5~16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시인이 모태에서 형체와 형질을 이루어 갈 때에도 이미 그를 보셨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지음을 받은 곳을 `은밀한 곳`, `땅의 깊은 곳`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편 139편 15절)
이것은 둘 다 어머니의 태의 비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입니다.
특히 땅이 깊은 곳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받았음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깊은 곳은 은밀한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신비롭게 지음 받았음을 뜻합니다.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마치 직물처럼 짜이고 조직되어 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시편 139편 15절)
장인이 형형색색의 실로 짜서 옷감을 만들듯, 옷에 장식을 수놓듯,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아름답고 정교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그를 만들었습니다.
전도서 11장 5절에서 전도자는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 라고 말했는데,
시인은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자라가며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을 생각하며 감동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보고 계셨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보셨다는 것은 단순히 지켜보고 아셨다는 의미를 넘어서,
한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는 전 과정이 하나님의 보살핌, 계획, 개입, 주관 안에 있음을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출생 전 과정을 아실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을 미리 다 아십니다.
시인은 `자기가 사는 날이 정해졌고, 그가 하루도 살지 않은 때에도 그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39편 16절)
이 고백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각 인생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며, 동시에 각 사람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각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심으로 생애 전체를 돌보실 것을 확신 가운데 소망하게 합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7~18절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와 깊으신 섭리의 비밀을 실질적으로 깨달으며 감격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시인은 주님이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신다고 고백했는데, 자신은 주님의 생각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고백함으로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그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가진 생각의 일부도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각 인생에게 세밀한 관심을 보이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와 사랑을 깨닫는다면 자연스러운 반응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달았기에 시인은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있음을 인지하며 그의 임재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시편 139편) 19~20절에서 시인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노래합니다.
앞선 분위기와는 다르게 한탄에서 탄식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인의 인생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악인에 대한 애통은 이 시가 시작되기 전에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원수인 악인에게 큰 고통을 당해왔으며,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의 결론부에서 악인을 언급하며 자신의 무죄함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드러내며 자신과 악인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악인은 파괴적이며 음모를 꾸미고 주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정의와 공평을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악인들은 윤리적인 범죄만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권위를 남몰래 허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신자 행세를 하지만, 속은 불신과 미움과 탐욕으로 가득하므로 철저하게 이중적인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21~22절을 통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자신도 미워할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자가 자신의 원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시편 139편) 23~24절을 노래합니다.
결국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마지막 구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6절을 통해 나를 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했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6절에 사용했던 용어들, `살펴보고`, `알아보고`, `시험해 보고` 헤아린 나를 (시편 139편) 23~24절의 결론에서 다시 사용합니다.
이는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시고`, `시험하시어`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당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뜻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살핀 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구합니다.
그는 특히 악한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시편 1편에는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대두되지만,
여기에서는 악한 길과 영원한 길이 대두됩니다.
여기에 악한 길은 우상숭배를 가리키기보다는, 슬픔과 고통에 이르는 길입니다.
영원한 길은 멸망하지 않는 길로서 생명과 번영에 이르는 길입니다.
시인은 이제 주님과 교통하는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3절에서 `나의 모든 길과 나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 익히 아신다`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악인들이 갈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이르는 영원한 길로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악인으로부터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인은 그 판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은 옳은 길, 선한 길,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오직 그 길로만 가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인생 여정의 길을 맡기고 나아갔던 것처럼,
오늘 묵상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 선 묵상 가족 여러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믿음의 순종과 신뢰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 묵상의 자리에서 주님을 향한 순종과 신뢰가 회복되길 원하며,
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인생 여정의 길을 맡기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 부어주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