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5.12.09(화) 시편 139:1 - 139:12 / 피할 수 없는 사랑의 빛

관리자
2025-12-09
조회수 50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2월 9일 오늘 해설 본문은 시편 139편 1~12절입니다.
안녕하세요, 묵상 가족 여러분,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잇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시편 139편을 묵상하게 됩니다.
보통 학자들은 (시편) 139편을 4개의 연으로 나누곤 합니다.
1) (시편 139편) 1~6절,
2) (시편 139편) 7~12절,
3) (시편 139편) 13~18절,
4) (시편 139편) 19~24절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는 오늘 앞선 2개의 연인 (시편 139편) 1~6절, (시편 139편) 7~12절을 묵상하게 됩니다.
특별히 (시편 139편) 1~18절은 찬송 시편으로,
(시편 139편) 19~24절은 비탄 시편으로 분류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게 될 첫 2개의 연인 (시편 139편) 1~6절과 (시편 139편) 7~12절은 2개의 하나님의 속성을 자연스레 생각하게 합니다.
(시편 139편) 1~6절은 하나님의 전지하심 곧 완전한 지식을 묵상하게 하며,
(시편 139편) 7~12절은 하나님의 편재(遍在, Omnipresence)하심 곧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게 합니다.
먼저 (시편 139편) 1~6절을 보겠습니다.
시인은 이 시편의 시작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 라는 강렬한 고백으로 열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절)
`살피다`라는 동사는 스파이가 땅을 탐색하거나, 광부들이 보석을 찾거나, 서기관들이 율법을 살피는 것과 같은 행동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 חֲ֝קַרְתַּ֗נִי (ḥă·qar·ta·nî) / You have searched me , 시편 139편 1절 ]
물론 하나님의 지식에는 그런 탐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표현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므로 시인은 `하나님이 나를 살피셨고 그분이 나를 아신다`고 말하며, "개인적이고 친밀한 앎"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철저히 아신다는 진리에서 시인의 고백이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지식, 임재, 능력의 틀 안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의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철저하게 꿰뚫는 지식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을 알고 계심을 시인은 (시편 139편) 2~3절을 통해 노래합니다.
우리의 안고 일어섬을 아시며, 우리의 생각을 멀리서도 밝게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취하는 모든 움직임을 아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동기들, 곧 그들이 그 행동으로 추구하려는 것까지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을 낱낱이 평가하십니다.
특별히 (시편 139편) 3절에 사용된 `살펴보다`라는 단어는
(시편 139편) 1절에 `살피다`와는 다른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3절에 `살펴보다`는 '까부르다', '키질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하는 키질의 과정처럼 평가하고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지식을 비유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 זֵרִ֑יתָ (zê·rî·ṯā) / You search out , To toss about, to diffuse, winnow , 시편 139편 3절 ]
(시편 139편) 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혀에 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그것을 완전히 알고 계시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 하려는 말들을 아직 만들어내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말할 것을 이미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139편) 5절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그의 손으로 안수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덮어주심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치 출애굽기 33장 22절에 하나님의 손이 모세를 덮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연상하게 합니다.
앞뒤를 둘러싸신 것처럼 온 사방을 두르시며 보호하시고 안수하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식이 너무도 압도적이기에 오히려 우리에게는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시편 139편) 6절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지만, 다 파악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한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39편 6절)
(시편 139편) 1~6절까지 "하나님"이 주어였다면,
(시편 139편) 7~12절은 '시인'이 주어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지하심"에서, "하나님의 편재하심"으로 주제가 전환되고 있고,
(시편 139편) 1~6절에서 시인과 하나님의 친밀함을 볼 수 있었다면,
(시편 139편) 7~12절은 그 임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주제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7절에서 시인은 `어디로 피해 도망치겠습니까?`라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수사적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피해 도망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확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거나 가려고 생각하는 어느 곳이든지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8~9절을 통해 2개의 상반되는 의미를 사용하여 예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하늘과 스올을 대비하고 있고, 새벽 날개와 바다 끝은 동쪽에서 서쪽까지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하늘과 스올이라는 수직적 대칭과
동쪽과 서쪽이라는 수평적 대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 어디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곳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과 스올이라는 극단적인 장소를 대비하고 있는데,
특히 새벽 날개와 바다 끝이라는 표현 속에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의 장소를 연상하게 하는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날아가는 새 이미지를 사용해서 서쪽 끝 방향인 지중해에 가장 먼 곳 해지는 장소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성경 저자들에게 혼돈과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그렇기에 (시편 139편) 8~9절은 빛과 생명의 장소에서 어둠과 죽음의 장소까지 이동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록 이렇게 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편 139편) 10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그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사랑 가득한 목적으로 그를 붙들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시인은 (시편 139편) 11~12절에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으로부터 막을 수 없음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1절에서 시인은 그가 가는 모든 곳이 압박하는 어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둠에 감싸인 자신의 모습을 시인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비록 이런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노래합니다.
주님의 편재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 12절에서 어둠이든 빛이든 주님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어떤 것도 그에게 해를 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어둠이나 멀리 떨어진 것이나,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꿰뚫어 보는 지식에서 그를 떼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139편의 전반부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되길 원하며, 우리의 신앙의 자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깨달아가기 위해 말씀 묵상의 자리에 잠잠히 머무는 시간이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묵상하며,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을 생각합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기꺼이 내어드리며 말씀 앞에 살아가는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거하는 그 어느 곳에도 편재하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이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전지하심과 편재하심이 깊이 깨달아지고 누려지는 시간이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

담임목사 : 이정철

주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곰달래로1길 14
팩스 : 02.2693.9072 / 
이메일 : losnyt2203@gmail.com